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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보머 젤이 뿌옇게 되는 현상의 원인에 대한 고찰과 간이 테스트

2020. 3. 28. solo

알콜 없이 그냥 만든 카보머 젤의 경우도 알콜만큼은 아니지만 뿌옇게 변하는 일이 많다.

젤 상태로는 투명해 보이던 것이 물을 섞으면 뿌옇게 변했다가 점도가 오르면서 다시 투명해지는 일도 있고, 젤을 완성 후 사용한 도구를 씻기 위해 물 속에서 휘젓거나 물에 오래 담궈 놓으면 그 물이 뿌옇게 변한다.

물에 녹지않는 어떤 입자들이 떠다닌다는 것인데 원인을 모르니 몇가지 가정을 하고 그 논리를 가볍게 분석한다.

1. 수돗물 문제

1.1 수돗물로 인해 pH가 변했다.

그렇다면 중화제를 더 넣거나 덜 넣었을 때 투명도를 되찾아야 한다. 하지만 완성된 젤에 산이나 염기를 투입해도 투명도는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 더 뿌옇게 되지도 않았고 투명해지지도 않았다. (거기에 산은 젤의 점도를 줄어들게 만든다.)

그렇다면 pH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pH가 중성에 가까울수록 투명해지긴 하지만 수돗물 정도로 영향을 주기는 어렵겠고 혹시 영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pH는 맞춰서 만드니 결국 아무 의미는 없다.

1.2 물속의 불필요한 입자 문제.

수돗물 안에 있는 염소나 철분 등의 입자가 카보머가 녹은 물 속의 산과 반응하여 물에 녹지않는 입자를 생성하거나 카보머가 수돗물 속의 성분과 반응하여 변한 후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 입자가 된 채로 고정된다.

이건 충분히 가능성이 있겠다. pH를 변화해도, 카보머를 신경써서 섞어도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경우가 잦으니 지금으로는 제일 유력해 보인다.

그런데 입자를 분석할 길은 없고 결국 정제수를 사용해 카보머젤을 만든 뒤 비교하는 방법 뿐이다.

정제수를 사긴 사야하는데... 택배를 받기 어려우니 참...

2. 카보머의 분산 과정의 문제

2.1 분산이 부족하다.

그렇게 섞었는데 부족하다고?

물론 카보머 분말을 얼마나 잘 분산시키냐에 따라 투명도가 달라지는 것은 맞는데 그래도 손으로 섞고, 블렌더로 섞고, 물에 뿌린 뒤 방치해서 녹이고 나서 섞기까지 했는데 부족하다면 강력한 모터를 사용하는 수 밖에 없다.

요리용 블렌더나 아니면 homogenizer같은 산업-실험용 장비를 써야한다.

아니면 덩어리를 걸러서 으깨는 방식을 쓰거나. 이건 그릇도 많이 필요하고 덩어리를 거를 체 등의 도구도 있어야 한다. 전문 장비를 사는것 보다는 훨신 비용이 적게 들어갈테고 대부분의 도구는 이미 가지고 있으니 나쁜 것은 아니긴 하다.

2.2 전단력 문제.

강력한 전단력으로 카보머 분자가 파괴되어 더이상 반응하지 않는 하얀 입자로 남는 경우.

하지만 그정도로 강력한 회전 공구는 사용한 적이 없으며 더군다나 고정되지 않은 액체(유체)에서 화장품 블렌더 수준의 RPM과 토크로 과연 분자를 파괴할 수 있을까?

각 분자간의 결합 정도는 떨어뜨릴 수 있을지 몰라도 분자 자체를 파괴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리고 화장품 블렌더를 최초로 사용했을 때는 수면 근처에서 날을 회전시켜서 RPM이 상당히 높은 상태였고, 그 상태에서 카보머 분말이 날에 부딫히면서 섞였는데 이 때 만들어진 카보머 젤은 상당히 투명도가 높았다. 두번째로 만들었던 젤은 거의 완벽한 투명에 가까웠고.

그리고 유튜브를 보면 화장품 제조업체나 카보머 제조업체는 수천 RPM의 고속 모터를 이용하기도 하니 이 가정은 틀린것 같다.

2.3 카보머 분말의 일부가 다른 카보머에 둘러 싸여서 반응을 하지 못한다.

이런 경우라면 회전 등으로 카보머 덩어리들에게 힘이 가해질 경우 그런 상태가 파괴되어야 한다. 결국 계속 섞으면 투명해져야 하는데 아무리 젤을 섞어도 일정 이상은 투명해지지 않았다.

비록 파워가 넘치는 전동 공구가 없어 손으로 섞긴 하지만 그래도 1분, 2분 정도가 아니라 하루정도 기간을 잡은 뒤 시간 날때마다, 눈에 보일때 마다 거품기로 계속 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정도면 높은 투명도는 무리라 해도 탁한 젤이 점점 투명해지는 변화는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경우는 기포 문제 이외에는 없었다.

3. 기포 문제

극히 미세한 기포가 젤 속에 갇혀있어서 투명도가 떨어진다는 가정인데 그렇다고 보기에는 좀 부족하다.

화장품 블렌더로 섞은 카보머의 경우 아주 작은 기포들이 생겨서 크림 같은 모양을 이루고 있는데 이 때 중화제를 섞어 젤을 만들면 젤 속에 작은 기포들이 그대로 들어있어서 거의 불투명에 가까운 모습이 된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 젤을 계속 뒤섞어주면 점점 투명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포가 깨알만한 크기나 쌀알만한 크기가 되면 더 이상 합쳐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는데 결국 먼지 수준의 아주 작은 기포는 섞이면서 사라지거나 합쳐져서 큰 기포가 된다는 뜻이라 이 가정은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기포가 문제라면 젤에 물을 확 부어서 점도를 극히 낮추었을 때도 내용물이 뿌옇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4. 간이 테스트 1

카보폴980으로 만든 투명한 카보머 젤.

젤은 투명하지만 크리스탈 클리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다.

수산화나트륨 용액을 조금씩 추가하면서 만든 테스트 젤.

카보머를 물 위에 뿌린 후 분말이 모두 젖을 때까지 기다리고 나서 섞었다.[각주:1] 섞을 때는 블렌더를 쓰지 않고 소형 거품기로 골고루 섞었지만 그릇 바닥에 뭉친 카보머 알갱이가 조금 있었다. 물은 데우지 않고 차가운 상태 그대로 사용했다.

중화제는 스포이드로 3mL씩 넣고 충분히 섞은 후 다시 추가하는 식으로 작업했는데 기포를 억제하기 위해 거품기를 돌리는 속도는 1초에 두번을 넘지 않았다.

이정도 투명도만 되어도 쓸만한 수준이긴 하지만 크리스탈 클리어와는 거리가 멀다. 내가 카보머 젤을 처음 만들며 기대했던 것은 기성 제품과 같은 수준의 투명도였다.

재료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 카보폴980: 0.6g
  • 수돗물: 194g
  • 아로마 오일: 두방울
  • 중화제: 3mL * 5 + 5mL * 3

이전의 카보머젤 제작 테스트에서 확인한 것과 같이 중화제를 약 2.5~3 : 1로 넣었을 때 가장 투명도와 점도가 높았고 3mL를 네번 추가했을 때, 즉 5 : 1에서 부터는 투명도의 뚜렷한 변화는 없지만 점도의 경우 2:1이 되자 아주 약간 물러진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거의 착각인가 싶을 정도로 작은 차이다.

오일의 경우 양이 적어서 그런지 아니면 중화시키기 전에 넣어서 그런지 위쪽으로 둥둥 뜨지않고 잘 섞인것 처럼 보였다.

지난번에 수분젤 만들때도 중화시키기 전에 넣었는데 뭐지? 그땐 오일 넣고 섞지 않은채로 중화해서 그런가?

5. 간이 테스트 2

카보머로 만든 수분 젤.

이번에는 수분젤을 새로 만들겸, 약간 비율을 변화시켰는데 총량 500g 중 카보머 비율이 0.2%, 글리세린은 1%로 조절했다.

  • 카보폴980: 1g
  • 수돗물: 460.67g = 461g
  • 글리세린: 5g
  • 아로마 오일: 티트리 5방울 + 페퍼민트 5방울
  • 중화제: 5mL * 6 + 3.3mL

중화제 비율 약 5 : 1, 네번째부터 투명도와 점도의 변화가 크지 않다. 만들어진 젤의 최종 투명도 역시 간이 테스트 1 항목과 비슷하다.

제작 방법도 비슷한데, 물은 아주 살짝 따뜻한 정도로 데워서 사용했고 카보머를 물에 뿌린 후 약 1시간쯤부터 섞기 시작했다. 잘 녹지 않는 덩어리들이 많아서 으깨면서 풀었다.

전동기구는 사용했는데 화장품 블렌더 말고 미니 우유 거품기를 썼으며, 수면 근처가 아닌 아래쪽에 깊이 집어 넣어 거품이 생기지 않게 했다.

중화제를 넣고 나서는 실리콘 주걱으로만 저었고 가능한 거품이 생기지 않게 조심해서 작업했다.

실패한 것

이 젤 이전에 비슷한 조건으로 테스트 했는데(0.25%) 그 때는 화장품 블렌더로 수면 근처에서 거품이 생기도록 강하게 회전시켰다.

그랬더니 카보머가 굉장히 잘 풀린 것처럼 보여서 중화제를 투입했으니 결과는 망했다.

젤이 아주 뿌옇게 되어서 아무리 중화제를 넣어도 투명해지지 않았다.

물론 점도는 문제가 없으니 사용상 하자가 있지는 않겠지만 시각적으로 그다지 보기좋지 않았다. 아예 색을 넣어서 사용할 목적이거나 이런 흰색 느낌이 좋다면 이대로 사용해도 괜찮을 것이다.

화장품 블렌더 사용 장면.

뿌옇게 만들어진 젤은 색이 투명해지지 않았다.

비슷한 조건인데 한쪽은 잘되고 한쪽은 잘 안되었으니 그렇다면 원인은 블렌더로 인한 거품이 아닐까 한다.

더 자세히 생각해보면 또 몇가지로 나뉘는데 다음과 같다.

  • 블렌더의 회전으로 카보머가 공기와 아주 많이 접촉했고 그래서 카보머 분자에 공기가 결합되었다.
  • 위 내용과 비슷하지만 공기가 결합된게 아니라 단순한 변색이다.
  • 카보머가 아닌 일부 산 성분과 공기가 반응해서 흰색 침전물이 생겼다.

이 세가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다.

아니면 카보머가 다 풀린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 정도인데 그렇다면 예전에 화장품 블렌더로 젤을 만들었을 때 잘 만들어진 것은 뭔가? 거품이 발생한 것은 똑같았는데.

한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그 때는 제작한 젤의 용량이 100g이어서 블렌더 사용 시간이 상당히 짧았다는 것이다. 기억을 떠올려도 변수라고 할 부분은 이것 뿐인것 같다.

그러면 사용 시간이 짧아서 공기와의 접촉 시간도 짧았거나 아니면 미니 블렌더의 용량 이내라서 카보머가 제대로 섞였다던가 둘 중 하나가 되겠다.

음... 일단 현재로써는 카보머를 분산 시킬때는 수작업으로 조심스럽게 하는 방법 뿐이라고 봐야겠다.

6. 간이 테스트 3

꽤 투명한 카보머 젤. 왼족의 탁한 젤과 비교된다.카보머 0.2%, 글리세린 넣고 아로마 오일은 뺐다.

왼쪽은 간이테스트2에서 만든 젤, 오른쪽이 이번에 만든 젤이다. 얼핏 보면 투명한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약간 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번 끓였다가 식힌 수돗물을 사용했는데 그래서인지 여태까지 만든 젤 중에서 가장 투명하지만 그래도 클리어 젤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손색이 있다고 느껴진다.[각주:2]

전동 기구는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만 저었고 아로마 오일도 사용하지 않았다.

최종 결과 이전에 만든 카보머 젤은 완전히 동일한 비율, 거의 동일한 작업 과정에서 아로마 오일을 넣으니 색이 다소 탁하게 변해서 이번에는 아로마 오일을 제외했다. 오일을 넣었을 때 카보머 젤이 뿌옇게 변하는 것을 막으려면 가용화제를 사용하던가 아니면 수용성 향료가 있어야할 듯 하다.

글리세린도 넣었을 때와 아닐 때의 차이가 약간 있었지만 눈을 부릅뜨고 봐야 할 정도의 미세한 차이라서 최종 테스트에서는 글리세린을 1% 넣었다. 뭘 만들든 글리세린이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드무니 글리세린을 빼고 만드는 것도 별 의미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

물을 끓였다가 식힌것 이외에 예전 테스트와 다른 부분은 카보머를 물에 넣을 때 체를 쳐서 넣었다는 점인데 이렇게 하면 카보머가 빨리 녹고 덩어리가 거의 생기지 않는다. 있어도 아주 작은 덩어리 한두개 정도 뿐.

일단 카보머 젤의 투명도에 대한 간이 테스트는 이것으로 종료한다.


참고

끓였다 식힌 물로 테스트 중 화장품 블렌더를 이용해서 만든 젤도 있었는데 투명도에 문제가 없었다. 간이 테스트 2에서 말한 블렌더 사용시 탁한 젤이 만들어지는 부분은 공기와의 접촉으로 인한 변색이나 침전물이 아니라 당시 젤의 제작 용량이 500g이라 블렌더의 힘이 부족해서 카보머가 물에 제대로 섞이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1. 최소 30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본문으로]
  2. 빛의 위치에 따라 탁한 정도가 달라보인다. 제일 탁하게 보이는 각도는 정면과 후면.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