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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주방비누 만들기 (콩기름, 반실패)

2020. 5. 26. solo

커피를 첨가한 주방비누.

부드러운 갈색과 향기로운 커피 냄새를 기대하고 커피비누를 만들었다.

하지만 커피비누를 만들 때 이상한 쩐내라고 해야할지, 기름 쩐내는 아닌데 뭔가 좀 불쾌한 냄새가 난다. 그렇다고 악취라고 할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에 따라선 악취라고 못할것도 없어보인다.

냄새는 대충 새우깡에서 고소함을 뺀 느낌같기도 하고 해산물에서 비린내를 제외하고 쩐내만 남긴것 같기도 하다.

비누의 경화 후에는 불쾌한 냄새가 없어지긴 하는데 그 대신 커피향도 나지 않는다. 커피 특유의 탄내만 미약하게 날 뿐.

테스트 해 본 커피는 맥심 아라비카100, 맥심 모카골드 마일드, 피코크 콜롬비아 안티오키아 수프리모(싱글오리진 콜롬비아 100%) 세종류. 커피 비율은 오일의 0.5~1%, 세가지 커피 모두 냄새의 차이가 없었다.

피코크 콜롬비아 어쩌구~는 원두를 대충 분쇄한거라 딱딱하기 때문에 물에 우린 뒤 액상의 커피와 원두 알갱이를 같이 비누에 넣었고 나머지 두개는 분말 커피라서 물에 녹이거나 혹은 다시 빻은 뒤 체로 걸러서 밀가루 수준의 아주 고운 입자만 사용했다.

오일은 콩기름 100%를 사용했고 커피를 제외한 재료 중 오일 비율은 약 70%다. 그러니까 여태 만들었던 콩기름 비누와 마찬가지로 오일:물:NaOH의 비율이 7:2:1이라는 뜻.

비누 속 커피의 불쾌한 냄새.

이 불쾌한 냄새는 분말이든 액상이든, 틀에 붓기 직전에 넣어도, 틀에 붓고나서 3시간 후 넣거나 12시간 후 넣어도, 건조한 비누를 물비누로 만들며 첨가해도 마찬가지로 커피 비누를 만들때는 어김 없이 불쾌한 냄새가 난다.

Lye에 커피를 바로 투입시에도 똑같은 냄새가 나지만 Lye없이 콩기름에 바로 분말커피를 투입여 섞으니 불쾌한 냄새가 안나고 그냥 기름 냄새만 났다. 이 기름+커피에 물을 넣고 거품기로 잘 섞으면 정상적인 커피 냄새가 나는데 이걸 전자레인지에 20초 돌린 후 확인해도 역시 정상적인 커피 냄새가 난다.

그런데 오일+커피+물에서 정상적인 커피 향이 날 때 물비누를 조금 투입하고 섞으면 즉시 예의 그 불쾌한 냄새가 난다.

아마 수산화나트륨 용액 및 비누 같은 유화제(계면활성제) + 커피의 어떤 성분이 화학 반응을 하거나 아니면 커피 속에 든 냄새 입자가 계면활성제에 멱살 잡혀 끌려 나오면서 불쾌한 냄새를 만드는 성분도 같이 끌려 나오는 듯.

커피+물+기름의 상태 참고

콩기름 + 커피(아라비카100) + 물 상태에서 의외로 층 분리가 일어나지 않고 잘 섞여 있었다. 기름 방울이 물위로 뜨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물비누를 넣고 섞으니 기름방울이 위쪽에 둥둥 뜨는 일이 발생. 아마도 커피가 천연 유화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아무튼 커피를 어떻게 언제 어떻게 넣던지 커피 비누를 만들면 불쾌한 냄새가 나는데 비누가 경화하면서 그 냄새는 날아가고, 아주 약한 탄내만 남거나 혹은 아무 냄새도 남지 않았다.

처음 커피비누를 만들때의 기대를 생각하면 반 실패다. 그러니 커피 향을 내려면 인공 향료를 써야겠고 커피를 비누에 직접 투입하려면 향료가 아니라 색소로 쓰는게 낫겠다. 색은 거의 내 생각대로 나왔으니...

그런데 인터넷에서 커피비누로 검색되는 여러 글은 대체 뭐지? 다들 냄새에 대해서는 별말 없던데 혹시 불쾌한 냄새가 나도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건가? 아니면 고수나 오이처럼 특정 유전자를 가진 사람에게만 불쾌한 냄새로 느껴지는거?

테스트용으로 만든 커피비누 샘플(일부).

커피에 첨가한 분쇄 원두가 보인다.

분쇄원두를 넣은 커피비누 두개.

오른쪽 비누의 색이 밝은 것은 찬물에 커피를 넣어서 그런듯. 왼쪽 비누도 같은 커피를 썼지만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서 조금 따뜻한 물에서 우러났다.

 

글리세린이 솟아난 자리가 어두운 반점 형태로 남았다.

또 한가지.

색소 역할을 하는 재료를 넣지 않은 비누에서는 몰랐던 부분인데 비누에서 글리세린이 솟아오르는 것이 비누 표면 전체에서 균일하게 배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랜덤한 구멍이 생겨서 거기서 글리세린이 솟아 결로현상이 생기는 것 같다.

바로 위 사진에 보이는 반점 같은 부분이 글리세린이 솟았던 자리다.

아마 비누 내부의 젤화가 취약한 곳을 파고들며 관처럼 진행되고 그게 표면까지 닿으면서 글리세린이 함께 배어나오거나 혹은 밀려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간단한 사용감.

커피비누를 틀에서 분리하고 1주일 되던 날 사용해 봤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사용한 비누는 1번, 2번 사진의 우측에 보이는 약간 밝은색 비누.

설거지용으로 썼는데 거품도 특별할것은 없고 냄새도 다 날아가서 그런지 아무 냄새가 안나는게 커피를 넣지않은 비누와 똑같았다.

사용하면서 비누의 내부가 드러나면 다시 그 불쾌한 쩐내가 나올지도 모르겠는데 겉부분에서는 문제 없었다.
-> 사용 중 불쾌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비누를 뭉개서 안쪽을 확인해도 마찬가지였는데 안쪽은 바깥보다 향이 진한것은 맞지만 불쾌한 수준은 아니었다.

커피를 아주 많이 넣으면 어떻게 되나?

비누에 커피를 아주 많이, 고농도로 투입해도 잘 만들어지는지 궁금해서 한번 만들어 보았다.

만들어 놓은 커피 비누를 사용하다보니 왠지 거품도 더 잘 나오는 느낌이 있어서 그것도 확인하고 싶었기에 5%, 10% 두가지 비율로 고농도 커피 비누를 만들었는데... 음... 이것도 결국은 실패.

커피를 너무 많이 넣으니 비누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사용한 커피는 맥심 아라비카 100, 물은 커피 중량의 두배로 전자레인지에서 따뜻하게 데워서 녹였다.

조금 더 자세히 적으면 커피 5%의 경우 조금 무르긴 해도 그럭저럭 비누가 만들어졌지만 10%의 경우 틀에 부은지 5일째 되는 2020.05.26 현재까지 비누가 굳지 않은 상태다.

아래는 제작 과정의 메모와 사진.

 

왼쪽은 커피 비누 7번(5%), 오른쪽은 커피 비누 8번(10%).

10%쪽 비누에 먼저 글리세린이 솟았는데 이때만 해도 어떤 비누가 나올까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른쪽의 8번 비누(10%)를 따라 왼쪽의 7번 비누(5%)에서도 글리세린이 솟아나온 후 8번 비누가 먼저 표면이 말라붙었다.

이 커피 비누들은 여태까지와 다르게 글리세린이 재흡수 되는것이 아니었다. 그저 건조될 뿐. 여기서 이미 망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3일째 되던 날에는 비누가 굳었나 확인하기 위해 송곳으로 살짝 그어 보니 7번은 무르긴 해도 굳어가는 중이었는데 8번 비누는 아예 굳지 않고 연두부처럼 송곳이 쑥~ 하고 들어갔다.

그래서 표면의 글리세린도 사라지나 확인할 겸 좀 더 놔두기로 했는데 5일째인 오늘도 글리세린이 사라질 기미가 없어서 결국 7번 비누 표면을 휴지로 닦아내고 틀에서 분리했다.

비누의 굳기는 7번의 경우 다소 물러서 꺼내는 동안 손가락 자국이 났고 8번은 아예 굳지 않아서 폐기하기로 했다. 8번의 경우 대략 뻑뻑한 양갱 혹은 무른 초콜릿과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틀에서 꺼내면서 엉망으로 찌그러지는 정도의 굳기였다.

 

표면을 닦아낸 7번 커피 비누.
비누 뒤쪽. 손가락 자국 두개가 보인다.
비누가 단단하게 굳지 않아서 틀에서 분리하는 도중 여기저기 뜯어졌다.

비누가 왜 이렇게 무르지?

이번 비누는 왜 이 모양이냐? 곰곰히 생각해보면 뉴스같은데서 때 되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커피는 산성 음식이라 몸에 해로워요 ^.^"

안그래도 커피에서 산미가 있기도 하니까 커피에 들어있는 산의 양만큼 수산화나트륨이 중화되어 비누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할수 있겠다.

그게 아니라면 커피속의 지방산 때문에 일종의 슈퍼팻을 준 것과 같은 상황이 되었는데 그게 너무 과도했거나.

간단히 검색해서 찾아보니 커피 속의 지방산은 비누 만들 때 필요한 그 지방산이었다. 이게 실제로 커피 속에서 얼마나 차지하는지는 몰라도 지방산 자체의 비율은 다음과 같았다.

커피의 지방산

팔미트산: 32%
스테아르산: 9%
올레산: 10%
리놀레산: 40%

로스팅한 원두 기준, 반올림 값.
출처: jucyjoo.tistory.com

음... 이거 비율이 팜유 비슷하네? 올레산 대신 리놀레산이 많은 것만 빼면 딱 팜유다.

아무튼 콩기름 100%의 무른 비누에서는 커피를 아무리 많이 넣더라도 오일 대비 5%이하로 해야한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색도 그렇고 사용감도 그렇고 2%면 적당할듯 싶지만 한계치는 약 5%라는 것.

물론 코코넛 오일을 많이 사용하는 비누라면 굉장히 단단한 비누가 나올테니 커피 비율을 10%쯤 사용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럴 이유가 있느냐 하는 것은 둘때로 치고 말이지...